ISSUE

뒤로가기
제목

류블리냐 Ljubljana, 슬로베니아의 수도를 찾다

평점 0점  

추천 추천하기

내용




글 최 훈 본지 발행인 사진 Wine Review



색다른 여정

여행의 주된 목적은 현재 집필 중인

 ‘역사와 와인’의 보완을 위해 

쉽지 않았던 이탈리아 북부지방을, 

그리고 알프스 국가군

(스위스, 리히텐슈타인, 오스트리아, 슬로베니아), 

나아가서 아드리아해의 

크로아티아, 세르비아, 마케도니아

 등지를 찾아 

아직도 미숙한 와인의 세계를 다듬고자 한데 있었다.


‘역사와 와인’의 보완은 

카사노바에 초점을 맞추었다. 

이번 여정에 카사노바의 흔적이

 숱하게 연계되어 있어 그러했고 

두 번째 취지는 알프스군의

 한 나라인 슬로베니아의 와인을 

실사코자 한 데 있다.



카사노바의 자취

카사노바는 세기적 낭만객으로 

널리 알려진 인물이다. 

그러나 그의 삶의 역정을 좇다 보면

 반드시 그러하지 않다. 

여성 편력이 그의 삶에 깊이

 베어있기는 하지만 

달리 그는 한 시대를

 자유인으로 산 

대단한 역사적 인물임이 틀림없다. 


한마디로 그는 

탁월한 연금술사였으며 

작가, 수학자. 양법학자, 철학자, 외교관이기도 했다.


우선 그가 태어난 베니스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그가 

수학한 파도바(Padova) 대학이 있어 

이곳을 카메라에 담았다. 

대학캠퍼스가 따로 있는 줄 알았으나 

중세 대학의 시작처럼 

이 대학도 자그마한 도시 자체가 

바로 대학 캠퍼스의 여러 섹터로

발전을 거듭해 오늘에 이르고 있었다.


그의 흔적을 달리 찾을 수 없던 차, 

아마도 본 건물인 듯한 건물 측면에

이 대학을 빛낸 출신들의 이름

이 새겨진 돌 비석을 보게 된다.

 이에서 여러 인사 가운데 

‘Giacomo Girolami Casanova, 1725~1798’ 

유일한 그의 흔적으로 담아 파도바를 떠났다.



파도바를 벗어나

 카사노바가 잠시 머물렀던 

고리자(Gorizia)에 자리한 

이름난 와이너리를 찾았다.

Castello di Spessa 와이너리는

 13세기에 축성된 성이다. 


단아한 붉은 돌로 된 

메인 빌딩을 비롯해 

와인셀러, 레스토랑, 호텔, 골프장 등 

복합 와인 리조트로 되어 있다. 

이 집의 시작은 1200년, 그리고 

여러 이름 있는 가문들이 

번갈아 성의 주인으로 머물렀다.


1773년, 낭만가, 모험가로 

익히 알려진 쟈코모 카사노바가

 집주인 까롤로 마뇨(Carlo Magno) 

백작의 초청으로 

그의 손님으로 잠시 머물렀던 일이 있었다. 


그러나 카사노바는 오래 머물지를 못했다. 

미모의 여성을 두고서 

샤또의 주인과 다툰 후

성을 나와 동남쪽에 자리한

 트리에스테(Trieste)로 

거처를 옮겼기 때문이다. 


오늘날 메인 빌딩(숙박 시설)에 들어서

여기에 앞서 정원에 아담한 

카사노바의 동상이 서있다. 

그리고 뒷 정원에는 온통 카사노바의 

일상을 담은 공원으로 조성해 두고 있어 

마치 카사노바의 기념 공원처럼 다듬어 놓고 있다. 

아주 인상적이다.



슬로베니아의 수도 류블리냐를 찾다

고리자에서 국경을 넘어 슬로베니아 

첫 번째 와이너리에 들렀으나 

약속한 시각이 서로 맞지 않아 

와인을 제대로 tasting 하지 못하고 

곧장 다음 행성지인 Podnanos의

 Burja 와이너리로 향했다.


와이너리는 로마와 훈족 간에 있었던

 역사적 전투장이었던 ‘비파바 계곡’에 있었다. 

처음으로 슬로베니아의 와인을 시음할 수 있었다.


 이 집을 나서 곧장 목적지인

 슬로베니아의 수도 류블리냐로 향했다.

이미 낮을 훌쩍 넘긴 터라 서둘러 

호텔에 짐을 던져둔 채로 곧장

 이 시가의 명소인 류블리냐 성을 찾아 나섰다. 


해가 서산에 걸렸을 무렵에 성을 찾아 나섰더니 

호텔에서 불과 20~30분 거리여서 

다행히 햇살이있을 때 성을 오를 수 있었다.

이국의 풍경이라 해도 류블리냐 성은 

아주 특별한 이국의 정서를 

듬뿍 보였다.


 성으로 접근하는 다리, 

그리고 성을 감싸고도는 강물 줄기,

 그 위에 관광 유람선이 떠 있어 

특이한 이국 정서감을 보였다.


사전에 이곳을 지나친 일도 없고 

역사적으로 얽혀 있는 이야기를 들어본 바 

전혀 없어 더 한층 이국의 천지였다.




류블리냐는 슬로베니아의 수도이다.

그리고 정치, 경제, 문화적으로 이 나라의 중심이다.

이 고을이 역사적으로 처음 언급되고 있는 것이

12세기, 당시 이 나라가 오스트리아의

합스부르크가에 지배를 받고 있을 때였다.


중세 시절부터 Austro-Hungary 

2중 제국이 해체된 1918년까지

 슬로베니아는 이 제국의 속령이기도 했다.


류블리냐가 처음 역사에 이름을 올린 것이

 BC 50, 당시 로마가 이곳에 

군사 시설을 조성한 데서 비롯된다. 


그리고 이 고을의 이름은 이탈리아식으로

‘아에모나(Aemona)’로 불렸다. 

달리 에모르나(Emorna)로 불리기도 한다. 

그러나 훈족이 로마에 들어와 분탕질하면서

 이곳 아에모나의 군영시설은 파괴되고 만다. 



류블리냐를 관류하는 

강 위에는 여러 다리가 걸쳐져 있다.

이 가운데 Dragon Bridge는 특별히 눈길을 끈다.

 이 성과 용에 얽힌 이야기는 많다고 한다. 

도심을 감고 도는 강물에 

유람선이 떠 있는 풍경은 이 도시가

 누리는 하나의 멋이기도 하다.





무엇보다 도시의 한가운데 

들어서 있는 옛 고성이 관광객의 흥미를 이끈다. 

이 성은 도심의 남쪽에 자리하고 있는 

나지막한 야산(해발 366m)의 정상에 자리하고 있다.

 500여 년간 류블리냐를 지켜 왔고

 지금도 이 도시의 상징적 명소로 역할을 하고 있다. 



성의 정상에 오르는 데는 

퓨리큘러 리프트를 이용하면서 

성벽이 있는 정상에 오른다. 


정상에 오르게 되면 도심과 

주변의 경관을 전망 탑을 통해 감상할 수 있다. 


날씨가 좋을 때는 

슬로베니아 국토의 ⅓을 볼 수 있다고 한다.

흥미로운 일은 한때 

이 성 자체가 감옥(형무소)으로 쓰였다는 사실이다. 

19세기부터 20세기 중반까지

 류블리냐 성 전체를 국영 감옥으로 사용한 바있다.


 지금도 교도소 상설 전시관이 있어 

당시의 흔적을 보여주고 있다.

이외에도 슬로베니아 역사 상설 전시관을 비롯해 

인형 박물관, 성 외곽의 독수리의 언덕 아래 

남쪽 비탈길에 펼쳐진 

이 성의 포도밭 주변의 산책도 가능하다. 


성 한편에서는 성채 아래로 흐르는 

강을 달리 걸어서 

사비냐 알프스(Savinja Alps)의 모습 등

 이 나라의 단면을 엿볼 수 있다.



ⓒ 2024. WINE REVIEW all rights reserved.


비밀번호
수정

비밀번호 입력후 수정 혹은 삭제해주세요.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댓글 수정

이름

비밀번호

내용

/ byte

수정 취소
비밀번호
확인 취소
댓글 입력

이름

비밀번호

영문 대소문자/숫자/특수문자 중 2가지 이상 조합, 10자~16자

내용

/ byte

평점

왼쪽의 문자를 공백없이 입력하세요.

회원에게만 댓글 작성 권한이 있습니다.


02-3217-7591

10: 00 ~ 18:00

국민은행 343-01-0018-505

(예금주 : ㈜자원평가연구원)

우리은행 327-155743-13-001

(예금주 : ㈜자원평가연구원)